1998년 에릭 레이몬드 등이 ‘오픈 소스(open source)’라는 용어를 고안하기 전에도 소스 코드가 공개된 소프트웨어들이 있었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창시자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이 연구원으로 일하던 1970년대 MIT나 여러 대학에서는 프로그래밍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1980년대 소프트웨어가 상품으로 인식되고 산업화하면서 그런 옛 전통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했지만 1990년대 후반 리눅스의 성장과 더불어 당시 넷스케이프의 소스 코드 공개 등 여러 사건을 전환점으로 ‘소스를 공개한다는 것’의 가치가 재조명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은 아예 오픈 소스 없는 인터넷 서비스 인프라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한국에서도 소스가 공개된 프로그램을 접한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전길남 박사 등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인터넷이 상당히 앞서 도입됐고, 인터넷에 연결된 학교들에는 이른바 ‘전산실 죽돌이’들이 등장했으며, 그 사람들은 인터넷을 탐험하면서 소스가 공개된 소프트웨어들이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창기 리눅스와 GNU 소프트웨어들이 이러한 호기심과 ‘잉여’로움에 방아쇠 구실을 한 이후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오픈 소스 활동이 일어났다. 어쩌면 나라에서 흘리는 떡고물(?) 없이 뭔가가 ‘자연발생적’으로 커나가기 시작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전설 같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누구나 오픈 소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시대가 됐다. 오픈 소스로 뭔가를 할 수 있으리라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리누스 토발즈 자서전 제목처럼 ‘그냥 재미로’ 오픈 소스를 다뤄온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오픈 소스 개발이 생업이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여전히 취미로 오픈 소스를 즐기며 산다. 이 인터뷰집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 ‘일부’를 다룬 것이다. 시간 한계상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 못 다한 것들을 풀어놓을 기회가 또 생길지 궁금하다.

흥미로운 작업을 제안해 주시고 여러 후원을 아끼지 않은 권순선 구글 DR(Developer Relations) 프로그램 매니저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과를 쪼개 시간을 내서 잡다한 질문에 차근차근 답변을 주신 인터뷰이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